박명수. 그를 미워하기 힘든 이유.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내 마음에 들지만, 또 어떤 사람은 이유 없이 미운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사람들중에 하는 행동은 밉지만 그 사람을 미워하기는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미워하기 힘든 캐릭터' 라고 하죠. 저에게는 개그맨 박명수가 그렇습니다.
2인자 명수옹. 욕심은 많고 성격은 급하지만, 급한 성격만큼 받쳐주지 못하는 감각. 외모로 보나 뭐로보나 롤모델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의 삶은 사실 우리 주변에 은근히 흔하게 널려있습니다. 사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 아버지 세대를 많이 닮아 있고, 나의 오늘을 닮아 있습니다.
<MBC 무한도전 2011년 달력특집 中>
지난주 (2014.4.12) 무한도전 스피드레이서 특집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과 그가 내뱉은 이야기들을 보며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그가 나름 자신있어 하던 레이싱에서 경쟁자들에 밀려 탈락한 직후 아쉬워 한 모습들의 연장입니다.
<MBC 무한도전 스피드레이서편 : 2014.04.12 방영>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세워 이름을 날리다'라는 말이고, 보통은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고 출세하여 자기와 자기 부모의 이름을 높이는 것을 뜻합니다. 벗어날 수 없는 유교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공의 기준이 바로 이 입신양명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의 행복이나 성취감보다는 내 존재의 '사회적 성공'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덕분에 진정한 행복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서구적 합리성을 선호하는 신세대들도 사실은 이 영향력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소중히 여긴다고 하더라도, 어릴때부터 보아온 롤모델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박명수를 미워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묘하게도 이 입신양명의 세계관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약해보이기 싫지만 똑같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존재. 강한 척 하지만 나보다 강한 상대 앞에서는 한없이 약함을 드러내야 생존하는 존재. 힘들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즐거운척 즐기는척 하며 살아내야 하는 존재. 이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제 곧 젊은 나의 모습이 될 것으로 느껴집니다
항상 피곤해보이고, 왠지 불성실해보이고, 촬영도 빨리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박명수의 모습에서 저의 오늘과 내일이 보입니다. 피곤하고, 불성실해지고 싶고, 퇴근도 빨리 하고 싶은 그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 무한도전의 박명수를 만났을 때는 저도 젊었고 그도 나름 젊었지만, 이젠 함께 나이 먹는 처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도 고생 많고 저도 고생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고생 많습니다. 사실은 박명수처럼 버럭도 지르고 싶고, 불성실하고도 싶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내 살 길을 찾아 그 자리에 가 있는 것이 우리들이죠.
<MBC 무한도전 : 간다간다뿅간다편 박명수가 애기 보는 장면, 2013.05.18 방영>
하지만 돌아보면, 박명수의 실제 모습은 극중 모습처럼 불성실하고 뺀질스럽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는 사실 TV뿐 아니라 과거에 진행하던 라디오 등등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에 언제나 성실하게 참여해 왔습니다. MBC라디오 2시의 데이트 (두데)의 MC를 성실히 수행했고, 한때 병원에 입원하면서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도 보여 왔습니다. 작곡활동과 디제잉을 하면서 마치 회춘하듯 즐거워 하는 모습도 익히 보았습니다. 그를 미워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한 남자의 그 모습.
거창하게 시작한 것 같지만, 결국 소박하게 글을 마무리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결국 그와 비슷한 삶을 살껍니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삶이 곧 나의 삶을 투영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실 박명수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예인으로써 상당한 지위에 오르고, 자기가 꿈꾸던 음악 생활을 시작하고, 명예와 돈도 많이 벌며 사는 그와 같은 삶 말입니다. 마지막 이미지는 그가 무한도전 달력에서 1위에 오른 작품으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웃음속에 눈물이. 그리고 눈물 끝엔 웃음이 있는 우리들의 삶을 위해.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