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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왜 의리에 열광하는가 - 믿을만한 정부를 내놓아라.

DeepSight 2014. 5. 23. 10:16


 의리가 난리입니다. 의리 연예인으로 유명한 김보성은 최근 방송 연예가 뿐 아니라 부문을 가릴 것 없이 엄청난 유행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90년대 최고의 히트 영화 시리즈였던 '투캅스'의 주인공 이후 두번째로 맞는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금새 의리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이 '의리'라는 코드를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리의 열풍을 단순히 유머 코드나 유행으로 받아 들이기에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의리 열풍은 불신에서 나온 역풍이다

 

 가슴이 아픈 청해진해운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는 이 시간 기준으로 아직 16명의 희생자가 가라 앉은 배 안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깊은 탄식과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 탄식과 무력감, 분노와 아픔의 정확한 근원은 단순히 '사고가 나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라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 실망의 근원을 더 깊은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대형 인명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 사람들은 대체로 사고의 원인규명보다는 우선적으로 '저 사람들을 빨리 구해야 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민은 그 인명 구조에 대한 관리 권한과 책임을 정부에 위임하였습니다. 정부의 기능중 가장 기초적인 것이 바로 구성원의 안전 보장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안전뿐 아니라 내부적인 사고로부터의 안전 유지는 고대 씨족국가부터 기본으로 가졌던 기능이죠. 우리가 불 나면 소방서에 전화하고, 사고 나면 경찰서에 전화하는 상식이 다 이러한 기본적인 약속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정부의 기본 기능 상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는 위와 같은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기본은 커녕 아주 처참하게 국민의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구조도 못하고, 정확한 정보 전달도 못하고, 국민들을 설득시키지도 못했습니다. 기대에 부응은 커녕 이번 사고로 정부 각 부처에 쌓여있던 폐단 (적폐라고...)과 무능한 수장들의 바닥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책임은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을 향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체인 '정부' 자체에 신뢰가 가지 않는 현실이 나의 생명과 안전을 '신뢰'하고 의탁할만한 대체적인 대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최소한 내가 내는 세금의 가치만큼의 기능을 기대하는 것이 납세자의 당연한 마음이고 타당한 요구조건입니다만, 그것이 만족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사설 경비업체는 내가 돈을 내고 가입한 패키지만큼은 서비스를 제공 합니다. 가입시 작성한 계약조항만큼은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의리의 뒤에는 신의라는 더 큰 덕목이 있다


 의리는 신뢰의 속성을 동반합니다. 배우 김보성은 예로부터 주변 연예인들과의 의리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니다. 그것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리를 져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의리를 가졌기에'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음에 가졌던 의리를 '끝까지' 지켜오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의리에 환호하는 것입니다. 그가 외치는 의리의 뒤에는 사실 '신의'라는 더욱 큰 덕목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나 개인이 손해보는 일이 있더라도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의리입니다. 내가 그 일을 해낼 능력이 없을때는 차라리 친구에게 찾아가 내가 능력이 없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의리입니다. 나보다 더 능력이 좋은 다른 친구를 데려와서 이 친구 한번 믿어보라고 말하는 것도 의리입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부는 이러한 정부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때 숨김 없이 설명해주는 정부입니다. 능력있는 사람을 필요한 자리에 앉혀서 정부부처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이 정부조직 구성의 상식입니다.



마무리


 의리가 마치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것처럼 유행이 되고 있지만, 사실 국민 모두가 의리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믿음직한 친구와 마찬가지로 믿음직한 정부를 꿈꿉니다.하지만 최소한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믿음직한 정부를 가지는 것은 우리에게 사치와도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슬프지만 현실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정부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누굴 믿어야 할지, 어디서 부터 얼마나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불신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면서부터 당연히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못 믿기에 더 열심히 믿음의 대상을 찾은 것일테지요.


 정부는 배우 김보성으로부터 시작된 이 의리의 폭풍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됩니다. 본인들이 왜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지 그 실마리의 일부를 '김보성의 의리'에서 찾길 바랍니다.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