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인터넷 역사를 살펴보면 엄청나게 많은 커뮤니티 서비스들이 창조되었다가 소멸되어 왔습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하죠. 열흘 붉은 꽃이 없고, 뭐든 흥하면 쇠하기 마련입니다. 마치 2010년 월드컵 우승팀인 스페인이 이번 2014 월드컵에서 완전히 망한 것처럼 말이죠. 어쨌거나 오늘날의 대세는 페이스북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움을 찾아 이동하곤 하죠.
오늘 여기에 최근 부각되고 있는 새로운 SNS인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 ) 이 있습니다. 최근 많은 연예인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대신 팬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인스타그램을 선택하고 있는데요,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이 다른 서비스와 다른 점은 '사진'에 집중된 서비스라는 점입니다. 사진을 찍어 자기 계정에 업로드하면 친구들과 자동으로 공유가 되는 것이죠. 그 사진도 일반적인 3:2 화면비의 사진이 아니라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비로 찍히는 것 역시 인스타 그램의 특이한 점이고, 누렇게 바랜듯 하면서도 감성적인 특유의 색감이 사람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진 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2010년 미국에서 시작된 이 서비스가 근래 한국에서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다름 아닌 '먹스타그램'으로의 진화이죠. 일반적으로 SNS는 자기의 일상을 올리거나 본인의 정치적 사회적 성향을 다른 사람에게 은근슬쩍 표현하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그 일상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내가 먹는 음식'이죠.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 외국에서도 자기가 뭘 먹었는지, 누구와 함께 했는지 추억을 남기기 위해 음식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아름답게 담겨 내 앞에 도달하는 순간은 민족과 언어를 막론하고 매우 행복한 순간이겠죠. 하지만, 살아온 경험으로 보나 주변의 이야기들을 보나 '대한민국 사람만큼 음식 사진을 이렇게 일관되게 열심히 찍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라는 의견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넷에 돌고 있는 방송 장면 하나가 이 사실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줍니다.
< 출처 불분명의 방송 장면으로 , 동방예의지국의 위엄 돋음 >
저는 인스타그램이 먹스타그램으로 활용되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사진이 주는 메세지는 강렬하다.
위에도 설명했지만,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업로드하여 공유'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입니다. 사진을 찍어 올리는 데에는 더 없이 좋은 플랫폼인 것이죠. 게다가 사진 찍는 실력에 따른 편차가 특유의 색감을 통해 확연히 줄어듭니다. 어떤 음식사진을 찍어도 감각적으로, 맛있게, 추억스럽게 찍히기 때문에 먹스타그램으로 발달하기 쉬웠던 것이겠지요.
2. 공유하기 편하고 읽기도 편하다.
인스타그램이 먹방의 전파 채널로써 '먹스타그램'이 되어가는 과정의 이면에는 사실 적절한 '프라이버시의 보호가 있습니다. 사람이 말이 많으면 그만큼 프라이버시가 많이 드러나게 되어있죠. 하지만 '사진'이라면 많은 말들 대신에 자기를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그냥 '나 이거 먹음.'이라든지, '이거 맛있음' 정도면 자기가 할 말을 다 하게 되는 격이죠. 사진 한장이면 메세지가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에 공유하기도 편하고 읽기도 편합니다.
3.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말해준다. ( I am what I eat. )
싸이월드에 주로 올라오는 음식 사진은 '값이 좀 나가는' 음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에 가서 투움바 파스타나 오지 치즈 프라이즈가 나왔을때 사진을 찍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김밥천국에 가서 치즈김밥이나 우동을 찍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가 무엇을 먹고 다니는지를 선택적으로 전달합니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놀이처럼 즐기듯이 자기를 높일 수 있게 된 것이죠.
< 영화 '베를린'의 한 장면, 영화는 기억 안나고 먹방만 기억난다는 의견도 많았다 >
먹음직한 음식을 통해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을 푸드 포르노 (Food Porn)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먹는 것을 보며 즐거움과 공감, 대리만족을 느끼고, 내가 먹는 것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행위죠. 방송에서도 이미 '먹방' (먹는 방송)이 대세로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영화 베를린의 하정우, MBC예능 아빠어디가의 윤후 등이 먹방의 대표주자입니다. 식신로드, 테이스티로드 등등 예전같으면 시간 때우기 + 식당 홍보의 장이 되었을 '음식점 탐방' 프로그램들이 이제는 각 채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간판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서두에 '화무십일홍'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트위터는 우리나라에서 유명인과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만 활용되었고,
정치권(이라고 쓰고 정부라고 읽는다)의 무분별한 공작에 의하여 SNS로써의 신뢰성과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페이스북은 최근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화된 SNS이지만, 갈수록 '광고판'으로 변질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어떠한 SNS도, 프라이버시를 제대로 지켜주지
않고, 서비스가 과도하게 상업성을 띠게 되며, 매체로서의 신뢰성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회원들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인스타그램의 한국 가입자수는 최근 들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페이스북에 흥미를 잃은 어린 유저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고, 이 추세는 최소 향후 1~2년은 계속 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인스타그램이 제공하는 '먹스타그램'으로서의 기능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주목해볼 일입니다. 특별히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음식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럴껍니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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